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서 IMF 고위 자문관 경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수립 과정에서 물가 지표만을 단일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취약성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정책 대응이 필연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토비아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자문관 겸 통화자본시장국장은 한국은행이 주최한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치며, 통화정책 결정 시 금융안정 리스크를 명시적으로 반영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 도입을 촉구했다.
금리 인하 국면에서 금융취약성 더욱 높아져
아드리안 자문관은 특히 금리 인하 등 금융여건이 완화되는 시기일수록 금융취약성이 오히려 상승하는 역설적 구조에 주목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저금리 환경을 이용해 과도한 레버리지를 축적하고, 자산 가격이 펀더멘털을 이탈해 상승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분석이다.
그는 "통화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경기 회복을 지지하지만, 중기적으로는 금융시스템 내 취약성을 누적시킨다"면서 "중앙은행이 이 같은 구조적 긴장 관계를 정책 설계에 내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타깃팅 체계만으로는 금융 불안정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 것으로, 글로벌 중앙은행 정책 커뮤니티에서 최근 들어 부쩍 확산되고 있는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두 목표 사이의 딜레마
문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가 압력이 낮은 시기에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면 금융취약성이 쌓이고, 반대로 금융 리스크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아드리안 자문관은 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의 긴밀한 정책 조합을 제시했다. 두 정책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시건전성 수단이 충분히 갖춰져 있을 때, 통화정책은 보다 유연하게 경기 대응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과제, 금융안정 지표를 정책 변수로
이번 컨퍼런스는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운영 체계를 점검하고 국제적 논의 흐름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국내외 주요 중앙은행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발표 내용은 한국은행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 가계부채 규모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부동산 시장의 가격 변동성도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리 결정 시 물가뿐 아니라 금융취약성 지수를 함께 참조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상 금융취약성을 통화정책 변수로 통합하는 작업이 단순한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질적인 정책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가가 안정되어 보이는 시기에도 금융 리스크가 수면 아래에서 축적될 수 있는 만큼, 사전적이고 선제적인 정책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