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행동 사이의 간극, 수치로 드러나다
대한민국 성인의 금융지식 수준이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 노후 설계와 재무 의사결정으로 연결짓는 금융 행동 역량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지식 점수는 73.6점으로, 2022년 수치인 75.5점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점수 자체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나, 문제는 이 지식이 실질적인 금융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소비자 금융역량 진단과 정책과제' 세미나를 개최하고, 금융역량을 단순한 지식 습득의 차원을 넘어 생애주기에 걸친 실질적 행동 변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집약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특히 노후 준비가 시급한 중장년층 이상의 시니어 계층에서 금융 행동 점수가 두드러지게 낮은 현상에 주목했다.
시니어 계층, 정보는 있어도 실천은 못 한다
금융 행동 점수는 금융 상품 가입, 은퇴 설계, 지출 계획 수립, 리스크 관리 등 실질적인 금융 의사결정 행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전문가들은 50대 이상 시니어 계층에서 이 점수가 특히 낮게 나타나는 배경으로 복잡한 금융 상품 구조에 대한 접근성 부족, 디지털 금융 환경 적응의 어려움, 그리고 생애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심화되는 재무 불확실성에 대한 심리적 회피 경향 등을 꼽았다.
실제로 많은 시니어 소비자들이 연금 상품의 구조나 의료비 대비 보험 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개념적 이해는 갖추고 있으나,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저하거나 전문가 상담보다는 주변의 비공식적 조언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노후 자산 축적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 금융교육이 해법
전문가들은 현행 금융 교육 체계가 청장년층 중심으로 편중돼 있으며, 시니어 계층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콘텐츠와 전달 방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금융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의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실제 의사결정 상황을 모의 체험하거나 단계적으로 실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구조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금융회사와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시니어 전용 금융 상담 채널을 확대하고, 오프라인 접근성이 높은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금융 교육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금융 행동 역량은 단기간의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만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정책 과제, 이제는 '행동 설계'로 전환해야
이번 세미나는 금융역량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공식적으로 논의한 장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금융 지식 점수를 높이는 데 집중했던 기존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금융 행동을 유도하고 강화하는 이른바 '행동 설계(behavioral design)'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는 금융 상품 가입 절차의 단순화,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보조 도구 개발, 그리고 시니어 금융 코치 제도 도입 등이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됐다.
금융 지식을 갖추고 있어도 이를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개인의 노후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시니어 계층의 금융 행동 역량 강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대적 과제임을 이번 진단은 다시 한번 명확히 하고 있다.
